김교신
국내 작가
김교신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1916년에는 함흥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9년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 입학했으며,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가르침 아래 기독교에 입신하면서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이 조국을 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22년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1927년 졸업과 더불어 귀국하여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양정고등보통학교, 경기중학교, 송도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1927년부터 월간지 성서조선의 간행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하지만 1942년 3월호(제158호)에 실린 권우언이 조선의 민족혼을 찬양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성서조선은 폐간되고, 신앙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이다.
출옥 후에는 흥남의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에서 5천여 조선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진력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불과 넉 달 앞두고 1945년 4월 25일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