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그 자체의 정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다면 민주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들에게는 역사적 부채감까지 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공식적으로 ‘왕이 아닌 인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선언하고,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권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이었고, 1791년 제정된 헌법에서는 법을 제정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과 이들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 시민을 구분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을 맡기는 사람들(노동자)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한 것이다. 결국 당시 시민적 주체를 구성하는 기준은 ‘재산’ 그리고 ‘남성적 동일성’이었다. 이것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한정된다는 전제에 입각해서였다. 그러자 시민적 영역에서 배제된 사람들, 즉 노동자와 여성들이 여기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상당한 권리를 얻어 낼 수 있었다. 19세기 내내 전개된 투쟁의 결과 노동자들은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마디로 19세기는 노동자의 시대였지, 여성의 시대는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한 시민으로서의 여성은 관념만 형성되고 있을 뿐 실천적으로 얻어 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여성들이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여성사는 가능한가?’에서 ‘여성 없는 역사는 가능한가?’로
여성들의 외침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여성사라는 학문 분야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1983년 생 막심에서 열린 학회 제목은 ‘여성사는 가능한가?’였다. 그러나 1991-1992년 조르주 뒤비와 미셸 페로가 낸 책의 제목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서구 여성의 역사』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루앙에서 열린 학술대회 제목은 ‘여성 없는 역사는 가능한가?’가 되었다.
반면 이런 여성들의 외침에 비우호적인 태도도 만만치 않다. 일상생활이 된 남성 우위론에 일반화된 여성 혐오, 페미니스트를 욕구 불만에다 괴팍하고 잘난 체하는 여류 학자 혹은 거세 콤플렉스를 일으키는 여장부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반(反)페미니즘, 남녀 사이의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평등 반대론 등등…. 한마디로 20세기의 반페미니스트 목록은 너무 길어서 모두 기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대립은 오늘날 이 시점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인간 여성이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사건과 인물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여성들이 한 인간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것이 결국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가 우리의 의식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