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매일이 축복입니다
문학/예술/에세이

돌아보면 매일이 축복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띄우는 신부님의 성찰의 메시지

구정모
출간일 2008년 12월 26일
ISBN 9788960510425
페이지 280쪽
판형 146*210
제본 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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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여정에 띄우는 신부님의 성찰의 메시지

평생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고 살 것을 서원하고 수도원에 들어온 지 23년째를 맞는 구정모 신부님. 사제로 살면서 만난 세상, 세상일, 세상 사람은 신부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요. 한 성직자가 걸어왔던 자취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진부한 말이지만 가난하고 초라할지라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삶이 자신의 고통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세상의 고통을 사랑하도록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신부님을 보며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삶은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낙담, 용기와 좌절, 용서와 상처, 자신감과 초라함 등 온갖 기억이 강이 되어 흐릅니다. 우리는 그 강 곁에서 세상을 사랑한 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삶에는 /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습니다. /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을 살아왔지만 / 돌아보면 매일매일이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 오늘이 지나면 반드시 내일이 왔고 /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가난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 저희의 삶이 아무리 어둡고 힘겨워도 / 하느님의 빛은 늘 우리 생명을 깊은 곳에서부터 밝히는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었고 /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268쪽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중에서)


여기, 한 신부님이 있습니다!

여기, 하루하루를 어찌 사는지 보여 주는 한 신부님의 편지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렇게 보냈는데 너는 어떠냐고 손을 잡고 물어봅니다.
그 속엔 신부님 가족사도 있고 살면서 만난 사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소한 일로 친구와 등을 지거나 신앙이 흔들리는 모습도 적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이 모두가 내 안의 하느님을 만나는 창이라고 합니다.

여기, 한 신부님이 있습니다. 뭐 하나 특별한 것도 없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큰 뜻을 깨쳐 우리 마음을 훌쩍 크게 하는 지혜의 말을 거창하게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엄한 신부님은 더더욱 아닙니다. 내 곁에서 느릿느릿 함께 산책을 하며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냈노라고 너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볼 뿐입니다.

학생보다 방학을 더 좋아하고, 공부할 때 지루하면 책상 위에 놓인 사탕 까먹는 걸 낙으로 삼는 신부님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눈이 보고 싶어 하염없이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갔을 정도로 눈을 좋아하고, 하루 30킬로를 걷는 것도 끄떡없을 정도로 산책도 좋아합니다. 매일 공부하고 가르치고 머리 쓰는 게 일이라 산책은 유일한 운동이자 휴식이랍니다. 신부님은 이런 산책길에서 만난 모든 것에 신부의 특권인 축복기도를 하기도 좋아합니다. 그 길에서 농부를 만나면 멀리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쑥스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주로 호주머니 속에서 하는 기도랍니다.

그는 일본 조치(上智) 대학교 신학부 교수입니다. 올해로 천주교 예수회에 들어간 지 23년째이고, 마흔여덟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며칠 전(12월 26일)에는 친척, 친구, 동료 들을 모시고 도쿄에서 최종 서원식을 가졌습니다. 세상일로 치면 결혼식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 형은 “안 됐으니까 그러지.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 됐어. 세상 사람이 누리는 기쁨은 없이 살아야 하잖아. 그러니 사람들이 모여 그 자리를 함께 하는 거여” 하면서 일본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충남 당진에서 1962년에 태어났습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후 1986년에 천주교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95년에 일본 조치 대학교 신학원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2001년에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매일이 축복입니다』에 실린 54편의 글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지금은 폐간된 천주교 잡지 『들숨날숨』과 영등포에 있는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착한이웃』에 연재한 것을 다듬어 다시 편집하였습니다. 이 속에는 삶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낙담, 용기와 좌절, 용서와 상처, 자신감과 초라함 등 온갖 기억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여기, 신부님 가족이 있습니다!

여기, 신부님 가족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어느 집 마음 씀씀이 깊고 애교 있는 막내딸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형제 중 막내입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병약해서 늘 자식에게 이별의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픈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학교에서 나눠주는 그 맛있던 옥수수 빵도 못 먹고 집으로 날랐답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힘들 때면 한잔 두잔 하던 술에 중독되어 평생을 괴로워하셨습니다. 엄하고 표현을 아낀 분이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아들에게만큼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늘그막에 운전대를 잡으면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받으며 거저 얻다시피 한 운전면허증으로 막내아들과 연수를 못한 걸 안타까워하셨고, 차 몰러 나가자고 조르는 아버지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장면 사드리는 것으로 대신한 아들은 아버지 청을 들어 드리지 못한 걸 내내 가슴 아파합니다. 아버지는 파킨슨병에다 치매까지 심해 자식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양로원으로 들어갔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도 농약 치고 소여물 주는 걸 걱정하는 천생 농사꾼입니다.

신부님에게는 장남 노릇 하느라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뒷전에 두고 집안을 돌보아야 했던 큰형 신부님과 어릴 적부터 자폐증을 앓으며 세상과 멀어진 채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 살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셋째 형이 있습니다.

신부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또 그들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아쉬워합니다. 피붙이 때문에 걱정하고 오해하고 미안해하며 살지만 가족은 가족입니다.

큰형은 이 년여 전에 미국으로 훌쩍 떠났습니다. 그 당시 제 본가는 몹시 어려운 때였습니다. (…) 저는 이러한 큰형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공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형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형이 자기 일만 챙기는 이기주의자처럼 느껴졌고, 꿈속을 헤매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였습니다. (…) 큰형이 무사히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적이 마음이 놓였지만 저는 안부를 묻기 껄끄러웠습니다.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였고 제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럭저럭 일 년이 흐르고 이 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점점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위급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실려 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큰형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막내 신부, 내가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가야 할 것 같지. 아버지도 그렇고, 셋째도 그렇고 내가 들어가는 게 좋겠지?” 체념과 아쉬움이 뒤섞인 형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
술을 따라 주시는 형님의 어깨에서, 그가 오늘날까지 지고 왔던 십자가의 무게와 그 무게를 견디어 온 만큼의 부피로 쌓여 온 삶의 진실이 느껴졌습니다. 집안일 돌보느라 꿈 한 번 제대로 펴 보시지 못한 형님이었지만, 조금씩 굽기 시작한 그의 등은 오히려 하느님의 자비를 조용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형님도 한잔 받으시지요.” 술을 따라 드리는 제 손이 조금씩 떨렸습니다. (37-39쪽 ‘형님과 하룻밤을’ 중에서)

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많이 하신 아버지, 명예나 인정보다는 가난과 굴욕 속에서 살아오신 아버지, 건강보다는 병으로 고생하신 아버지가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제 자신이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이 정도 깊은 신앙과 참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가난하게 사셨던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많은 이들이 우러러볼 만큼 성공하셨거나 이름을 떨친 분이었다면, 그리고 술 중독으로 말미암아 깊은 고뇌의 골짜기를 걸어본 분이 아니었다면, 저도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절실히 기도드릴 수 있었던 일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응답을 제 욕심대로 들어주시지 않고 당신 뜻대로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52-53쪽 ‘부활절을 기다리며’ 중에서)


여기, 신부님이 만나는 세상이 있습니다!

여기, 신부님이 만나는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료라는 관계로, 사제라는 모습으로, 동포라는 테두리로 만나고 헤어집니다.
삶의 긴 여정을 지나면서 만나고 이별하는 사람들 속에는 사소한 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등을 진 의기투합했던 친구도 있고, 곁에 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찾아뵙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후회하는 가슴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습관과 처지가 달라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어려운 상대도 있고, 처음 만나 어색하고 서먹한 사이를 지나 깊은 정을 나누고 헤어지는 아쉬움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부님 일상에도 수많은 사람이 머물렀다가 지나갑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길을 잃고 느지막이 천주교 신자가 되어 손자뻘인 신부님께 늘 허리 굽혀 인사하며 꼬깃꼬깃 모아둔 돈을 용돈 하라고 건네주던 남쪽 나라 진주 김남주 할머니가 있고, 사제 서품 10주년을 맞은 선생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노래 연습을 하고 깜짝 쇼를 펼쳐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스승을 눈물짓게 만들었던 제자들도 있습니다. 수련원에 들어와서 ‘수련장 신부에게 들키지 않고 낮잠 자는 노하우’를 일러주며 늘 형처럼 보살펴 주었던 각별한 선배도 있고, 예수회 수련원에 함께 입회하여 이제 늘어난 흰머리를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서로의 별명을 부르며 놀릴 수 있는 동기동창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만남이 신부님에게는 삶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이 맞았습니다. 산을 좋아하여 등산도 하고, 여행도 가고, 젊은이들을 모아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신학이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글로 밝히기조차 부끄러운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조금씩 나빠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예전 같은 존경이나 신뢰, 따뜻함은 사라졌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 안에는 분노와 냉소, 외로움과 죄책감이 번갈아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사람들이 그 친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무척 힘들고 고생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번에 ‘흥, 자업자득이다. 그것은 자기가 욕심을 부린 탓이요, 신앙인답지 못하게 산 까닭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혼자 판단해 버렸습니다. 보상 심리였을까요. 조금은 고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다가온 자신의 모습,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한 모습, 아! 무척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119-120쪽 ‘용서를 빌며’ 중에서)

저는 이곳 공동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모두 제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 갈등은 이곳으로 이사 온 그 이튿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일에 정신을 빼앗겨 그날 저녁의 기도 당번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원장이신 R신부님은 처음부터 규율을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셨는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저를 기다렸다가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큰소리를 내거나 싸움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저에게 그날 밤 원장 신부님의 무서운 얼굴과 꾸지람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연구를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늘 보장되었으므로 잘 보호된 울타리 안에서 제가 책임을 지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하였는데, 오래 길들여진 이런 습관이 깨지다 보니 적응을 못하고 허둥거리게 되었습니다. 원장 신부님에 대한 섭섭함은 화로 이어졌고, 자신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움이 더해 갔습니다. (124-125쪽 ‘고난을 사랑하여라’ 중에서)


여기, 수도자로서 삶이 있습니다!

여기, 수도자로서 삶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도자들이 많습니다. 평생 수도원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동과 기도로 희생과 보속의 삶을 사는 수녀님이 있고,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상과 어우러져 살며 세상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신을 도구로 내어 주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일이 다르고 삶의 모습이 다양해도 수도자들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삶을 드러내고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신부님도 이런 삶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고 세속적인 욕망에 마음이 이끌릴 때도 있습니다. 방황할 때도 있고 마음이 허공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심도 쉽게 하고 마음이 변하기도 합니다.

신부님은 성직자라고 젠체하지 않습니다. 난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고 처음에 서약했던 것처럼 진실하지도 굳세지도 못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은 외로움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나는 너와 다르지 않고 나도 똑같은 걸 겪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성당을 찾고 기도를 봉헌합니다. 저는 주로 신앙이 흔들릴 때 기도를 드립니다. 수도자가 신앙이 흔들린다고 하면 의아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이 왜 찾아오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충분히 체험하였고,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도 저는 계속해서 이런 위기를 겪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인간의 조건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서 평생 그대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평생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겠습니까? 몇 년 못 가서 그 마음은 흔들리고 이러저런 이유로 시련을 맞게 되겠지요. (…)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이리도 약합니다. 간을 빼 줄 것 같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고, 친하게 지내다가도 상처 주고 배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그런 약함에 무릎 꿇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위대함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그리하며 삶을 다시 시작합니다. (129-130쪽 ‘신앙의 나무’ 중에서)

올여름의 사십 일은 마흔 살 생일에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을 하루하루 음미하고 확인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깊게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욕심이 생기는데 그건 다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롭고 허전하니까 유명해지고 싶고, 힘을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아닐는지요. 저도 요새는 그런 욕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동안은 존경하는 예수회 선배 S신부님을 떠올리며 ‘나도 저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고,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이 정도는 써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귀가 따갑도록 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도를 하여도 들리고 산책을 하여도 들이고 밥을 먹어도 들리고,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더 생생하게 들려 왔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목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가장 진실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함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하느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170-171쪽 ‘마흔에 떠난 사십 일간의 기도 여행’ 중에서) 



<추천사>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부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늙고 병든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 때 함께하는 것이며,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 드리는 일에도 있으며, 어려서부터 병약한 셋째 형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속에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슬픔과 아주 사소한 예화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이야기는 절대로 사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사소한 이야기 속에 진리와 부끄러움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구석은 뜨거운 감동으로 젖어듭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편지글이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신부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수도자의 거짓 없는 자기 고백인 이 책은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깃들어 있는 ‘내 책’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 김형영 (시인) 

머리말
들머리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1장 부모님을 닮은 하느님
부모님을 닮은 하느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빗님에게 / 귀향 / 형님과 하룻밤을 / 아버지의 마지막 로맨스 / 일상 속의 부활 체험 / 부활절을 기다리며

2장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구나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구나 / 동창회 모임 / 내가 너를 만날 때 / 작은 예수님들 / <겨울연가>와 일본 / 친구 자랑 / 우리는 친구지 / 은총의 이야기 / 생명을 불어넣는 성령님 / 남쪽 나라 진주 할머니 / 회상의 축복

3장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 너만큼 소중한 것도 없지 / 용서를 빌며 / 고난을 사랑하여라 / 신앙의 나무 / 쓰레기통에 깃드는 사랑 / 십자가, 생명과 구원의 원천

4장 말씀에 귀 기울이기
말씀에 귀 기울이기 / 흰 눈 되어 내리소서 / 가을의 길목에 서서 / 성모성월 / 그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 마흔에 떠는 사십 일간의 기도 여행 / 사랑의 실천과 신앙 / 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5장 인생의 길을 찾아서
인생의 길을 찾아서 / 출세 소감 / 아버지를 찾는 미아 / 나무 한 그루가 자라듯이 / 구 제미 그룹과 함께 / 수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길 / 사랑의 성사 / 크리스마스 인사

6장 나의 하루, 영원을 살기
나의 하루, 영원을 살기 / 어리석기는… / 내가 만일 / 하느님의 성배 /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 하느님을 찾는 삶 / 내 일기장 속에는

7장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 송구영신

구정모

구정모 신부는 1962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지금 일본 조치(上智) 대학교 신학부 교수입니다. 올해로 천주교 예수회에 들어간 지 23년째이고, 마흔여덟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후 1986년에 천주교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95년에 일본 조치 대학교 신학원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2001년에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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