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가치인가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상처들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때로는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자신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 준 사람에게 극심한 증오와 분노를 느끼고,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죄와 용서를 둘러싼 여러 종교적 진리와 철학적 성찰들을 접하며 우리는 용서의 조건이나 가치를 배우지만, 수많은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어쩌면 용서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용서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위대함’이나 ‘기적’과 같은 수식어들은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용서를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기 쉽고, 용서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나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결론지어 버리곤 한다.
이처럼 용서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간단히 정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이다. 용서를 가리켜 숭고하면서도 겸양의 미덕을 일깨우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무가치한 몸짓에 불과하다며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와 맞먹는 정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의견이 분분한 개념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용서를 하는 행위가 유동적이고 능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또 어떤 계기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에 따라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용서는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커다란 용기와 결심에 따른 선택임에도 용서는 그 후의 삶에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난한 여정인 것이다.
이 책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에는 세계적인 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The Forgiveness Project)’를 통해 자신의 용서 경험을 공유한 46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학대나 폭력, 테러, 학살, 전쟁 등으로 물리적·정신적 외상을 입었지만 복수를 하는 대신 용서와 씨름해 온 사람들이다. 아들을 죽인 소년을 용서한 그레이스,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들을 용서한 매들린,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 간 자살 폭탄 테러범을 만난 조, 그리고 범죄와 폭력에서 벗어나 속죄의 삶을 선택한 새미….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도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용서를 결심한 걸까?
“용서는 실용적이다. 그것은 실제적이고 오래가는 복수가 된다.”
마치 내 용서가 그를 산산조각 낸 듯했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였다. 이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제대로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떨리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카페에서 나오며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에게서 내 힘을 모두 되찾은 것이다. _본문 40쪽
존경했던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한 열두 살의 제프에게 그 기억은 가슴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 그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앗아 갔다. 마음 저변에 깔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폭력을 일삼으며 언제나 자신을 방어했다. 그런 그에게 ‘낯선 평화’처럼 찾아온 용서의 감정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과의 연결 고리를 끊음으로써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20년 전에 나를 성추행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오늘도 여전히 그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나를 20년 전 그 자리에 가둔 채 틀어 쥐고 있었다. 용서는 ‘지금, 여기’와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에 휘둘리지 않을 힘 또한 갖게 해 준다. 말 그대로 과거의 정신적 외상을 무너뜨려 없앨 수 있게 하는 것이다. _본문 41쪽
추천사
용서는 일반화가 가능하지 않고, 또 그래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해결 매뉴얼’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피해란 원래 복잡하고 다양하고 모순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우리의 굳은 몸을 다른 세계로 이동, 변환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희진, 여성학자,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지금까지 용서에 대한 담론들이 하느님의 은총이나 부처님의 가피(加被)에 기댄 추상적 혹은 종교적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 책은 보다 현실적인 토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끈질기게 묻는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저자
용서는 결코 간단히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다양한 용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진정한 용서란 상처와 맞서 싸운 치유의 여정이고, 내면의 변화를 통해 치유의 힘이 발휘되는 과정임을 잘 보여 준다. 김선현,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장, 『그림의 힘』 저자
추천사
복수할 권리를 내려놓고 분노의 사슬을 끊는다는 것
1 복수 대신 용서를 결심한 사람들
내 아들을 죽인 소년 | 더 나은 과거에 대한 희망을 놓는다는 것 | 아버지를 되찾은 순간 | 용서라는 실질적 복수 | 내 본질과 존재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다 | 자아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 | 길을 만들고 싶다면 그곳을 걸어라 | 용서, 구속과 자유의 길 |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 선과 악은 우리 모두 안에 공존한다 | 상처 떠나보내기
2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찾아온 낯선 평화
나를 위한 용서 |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피해자 |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찾아온 낯선 평화 | 아들을 떠나보내고 | 비폭력만이 폭력을 이길 수 있다 | 오늘과 다를 내일 | 남겨진 기억들 | 잃어버린 세월, 도둑맞은 행복 | 두 번째 삶 |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 | 하늘은 늘 그곳에 있다 | 멈추지 않을 투쟁 | 악의 평범함 | 화해의 춤
3 용서하는 나, 용서받는 나
마음으로 낳은 아들 |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 증오를 짊어질 힘 | 나를 용서할 수 있는 날까지 | 변화의 첫걸음 |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길 | 새로운 내일을 위한 다짐 | 삶을 바꾼 만남 | 6년 만의 재회 | 어리석은 지난날의 기억 | 변화를 일으킨 대화의 힘 | 속죄의 길 | 진실을 바라보는 눈 | 증오 후의 삶
4 사랑만큼 신비로운
용서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가치인가 | ‘용서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 종교적 미사여구에 가려진 용서의 본질 | 흑도 백도 아닌 회색빛 용서 | ‘용서 프로젝트’를 둘러싼 오해들 | 복수 대신 용서를 결심한 사람들 |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 공감과 치유, 그리고 희망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