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노 과레스키는 ‘돈 카밀로’와 ‘페포네’라는 사랑스럽고도 인간적인, 전 세계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다. 그는 ‘작은 세상(piccolo mondo)’ 시리즈(한국에는 ‘돈 카밀로와 페포네’로 소개되었다.)에서 포 강가에 있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신부 돈 카밀로와 읍장 페포네가 정치적 입장 차이를 가지고 사사건건 대립하며 벌이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유머(풍자) 문학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반니노 과레스키 작품 세계의 또 다른 축은 실제 그의 가족을 모델로 한 ‘가족 이야기’ 연작 소설로, 그 대표작이 바로 이번에 소개되는 『까칠한 가족』(원제: Corrierino delle famiglie, 1954)이다.
이 작품은 실제 과레스키 가족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현대 가족이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생생한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과레스키 또한 저자 서문에서 “평범하고 진실한 사람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과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우리가 겪고 이는 사소한 일상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함께 미소를 보내기 위해서”, “그 사소한(비록 겉으로는 커 보이더라도 사소한) 문제들을 우리 영혼 속에만 감춰 둘 경우 혹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우울한 비극의 그림자를 없애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라고 이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따스한 유머 그대로 예리함은 더욱더 증폭... 가족의 문제를 되돌아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족 이야기’는 과레스키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주제였다. 과레스키는 1939년부터 풍자․유머 주간지 베르톨도(Bertoldo)에 일기 형식으로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쓰기 시작했고, 1945년 창간된 유머 주간지 칸디도(Candido)에서는 고정 칼럼으로 썼으며, 1961년 이 잡지가 폐간된 뒤에는 1964년부터 다른 주간지 오지(Oggi)에 다시 가족 이야기를 연재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발표한 가족 이야기들은 나중에 여러 작품집으로 출간되었는데, 『까칠한 가족』(원제: Corrierino delle famiglie)은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특징적인 이야기들을 엮어 놓은 작품으로 미국에서는 이미 1968년에 번역 소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까칠한 가족』은 칸디도에 실린 글들을 발췌한 것으로 이미 반세기가 넘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국의 가족의 모습과 비교해도 낯설지 않을 만큼 생생한 현실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유명 소설가이나 집안에서는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조반니노 과레스키’ 자신과 약간은 몽상적이고 현실 감각이 없는 아내 ‘마르게리타’,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알베르티노’, 어리지만 논리 정연한 ‘파시오나리아’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무대를 통해 인간의 삶과 일상적 드라마를 매우 정교하게 재현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은, 분명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전 인류적인 보편성을 얻으며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렇게 우리는 과레스키 가족의 소소한 일상과 유쾌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가족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의 평범한 가족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2006년 한국의 평범한 가족과 유사점이 많다. 자상하면서도 권위 있는 가장이 되고자 하는 아버지의 이중성,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휘둘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의 시험 점수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 투명하고 냉정하기까지 한 시선으로 부모를 평가하며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정치한 논리를 갖고 있는 아이들….
과레스키 팬들에겐 또 하나의 선물
그래서 독자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각자 다른 주제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자신 또한 조반니노나 마르게리타처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지, 때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한 아이들의 주장에(말대꾸로 들리지만) 부모로서 체면을 구기지 않고 어떻게 잘 수습할 것인지 등을 생각하며 바로 자신의 가족 문제를 돌아보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결혼 적령기의 미혼이라면 알베르티노와 파시오나리아를 보면서 “맞아, 맞아. 나도 어릴 때 저랬지.”하며 깔깔거리다가도 자신 또한 곧 부모가 될 나이라는 것을 깨닫고 좋은 부모는 어때야 하는지, 가족의 의미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의 문제는 모든 가족의 문제일 수 있다는 과레스키의 말은 전적으로 옳은 셈이다.
과레스키 특유의 유머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날카로운 필치는 더욱더 배가된 이 책은 과레스키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과레스키의 새로운 작품을 접하는 기쁨과 과레스키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엿보는 즐거움, 그리고 내가 속한 가족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힌트까지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과레스키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흔치 않은 걸출한 작가를 알게 된 기쁨이 가장 우선일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