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상의 세계를 정복하다
인간은 단순히 생존을 문제 삼는 단계를 넘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들의 기원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마음속에 그려 보고자 하였다. 약 3만 년 전에 인간은 목탄, 안료, 붓을 들고 그들의 이야기와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동굴의 보다 먼 곳, 보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면서,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고 내면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성스러운 것을 알게 되고 종교가 그 윤곽을 잡아 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와 예술의 축제에서였다.
기원전 3만 3000년에서 1만 8000년 사이에 해당하는 아주 오래전 시기에, 인간은 주로 어두운 동굴 벽과 밖으로 드러나 있는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흔적은 라스코, 니오, 코스케르, 쇼베 동굴과 포스코아 절벽 위의 암각화 등에 지금껏 남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구석기 시대 동굴 예술은 거의 유럽에만 존재하였다. 중앙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등지에서는 그러한 예가 매우 드물고, 아프리카에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의 진보나 우위가 아니라 문화적 선택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다른 지역에서는 동굴 예술이라는 도구 대신 다른 도구를 통해 성스러운 정신과 종교를 표현했을 거란 뜻이다.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동굴 내벽에 표현된 그림은 대부분 동물에 관한 것이고, 사람 손가락 자국과 함께 드물게 아주 간략하게 표현된 사람 데생이 있다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는 동물들로 가득 찬 세계다. 그것은 수적으로도, 힘의 측면에서도 인간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초자연적인 힘은 동물적 특권 영역에 속했고, 그러므로 인간은 동물적 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라스코 동굴의 화려하고 섬세한 벽화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똑같은 추상 능력과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기에 이미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 어린 눈을 뜨게 되면서 비정상, 모순, 조화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고, 점차 아름다움, 예술, 백일몽 등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동굴 깊숙한 곳에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너그러운 힘과 저주, 친구와 적 등이 병행하는 세계를 이해하였다. 종교적인 정신은 이처럼 동시에 거의 논리적으로 인간에게 오게 된다.
그러나 기원전 1만 년경에 동굴 내벽에 새겨진 예술의 전통은 점차 중단되었다. 빙하기 말엽에 점진적인,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날씨가 더워져서 특정한 종의 동물들이 멸종했다. 매머드는 이미 사라졌고 순록이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멧돼지와 사슴들만이 그러한 날씨의 변화를 극복했다. 사람들은 생활 방식을 바꾸었고 사회 구조도 변했다. 비가 오고 숲이 확대되면서 동굴들에 물이 찼고, 동굴 예술은 점차 목각 예술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 존속하는 종교마저 변형되거나 사라졌다.
인간, 권력을 정복하다
기원전 1만 년경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란 ‘새로운 돌’ ‘돌의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즉 단순히 다듬기만 했던 ‘구식의 돌’의 구석기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특히 반들반들한 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야생의 세계를 길들이고, 그것을 인공적으로 만들고 문명화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변화하고, 자신들의 태도와 습관, 자신들과 닮은 동물들과의 관계도 완전히 바꾸었다. 그야말로 문명의 톱니바퀴에 제대로 시동이 걸린 것이다. 이제 인간은 차츰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촌락들을 세우면서 정착하기 시작하고(기원전 1만 2000년부터), 농사(기원전 9000년경)와 목축(기원전 8500년경)을 생각해 내면서 자신들의 식량을 스스로 생산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은 일을 전문화, 분업화했을 뿐만 아니라 쟁기, 수레, 바퀴 등 도구들을 개량하고, 이러한 도구들과 금속의 교역에 나선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인류의 급속한 수적 증가와 더불어 이제 인간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우두머리를 세우고, 영토와 권력을 영속화시켜야만 했다. 그것이 권력의 시작이고 국가의 시초이다. 인류에게 위계질서가 생기고 권력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고인돌의 존재와, 값비싼 집기들과 함께 묘지에 묻힌 주검들의 자취로 알 수 있다. 이미 죽음에도 불평등의 개념이 깊게 자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발명하고, 이집트에 최초의 파라오가 등장한다. 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최초의 농업 사회는 매우 동화된 사회로 인간은 빠르게 서로 의존적이 되었고, 촌락은 하나의 중심지를 필두로 연합했으며, 사람들은 이곳에서 동맹과 결합에 의한 긴장을 조정한다. 이곳에서는 주기적으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고, 마침내 인간은 그 자신이 가장 좋은 인간일 수도 있고 가장 나쁜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후…
수만 년의 세월이 인간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인류는 교류의 세계화와 더불어 커다란 혼합의 결과인 획일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No’이다. 세계적으로 몇몇의 대도시와 브라질, 인도양 같은 옛 노예 수용지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동향인들과 함께 살고 있을뿐더러, 인류의 혼합은 ‘카페오레’라는 표준 혼혈 세대를 낳는 것이 아니다. 카페오레는 혼혈 1세대에서만 나타나는 겉모습이고, 유전자들은 각 세대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므로 혼혈 2세대, 3세대는 더욱 다양한 외형적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양산한다. 반면에 언어는 인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즉 이용이 적은 언어들은 소멸하고 점점 몇 개 안 되는 언어로 통합되어 가는 것이다. 인권이나 기타 문화적인 가치관 또한 그러하다. 인간은 사정을 헤아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항상 근대적인 것을 선택해 왔고, 근대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소위 ‘민족’이라는 것의 유전적 표식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경찰의 한 과학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마그레브(아프리카 북서부) 태생 사람들을 구별해 내기 위한 유전학적 기술에 대해 도움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하며, 저들의 원시적인 이념을 꼬집었다. 우리 모두의 조상은 동일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를 수 없다. 개개인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혈액형이 A형인 아프리카 사람에게, 같은 피부색을 가진 B형 아프리카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것보다 다른 피부색을 가진 A형의 아시아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도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문화적 차이에 의해 차별되어서는 안 되고, 그러한 것들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각자의 책임에 속한다.
저자는 또한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인 선사 시대 동굴 벽화와 암벽 예술을 보호하자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두뇌, 행동, 환경에 맞서는 태도 등으로 우리의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조상들의 상상의 세계에 의해서도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암벽 예술, 즉 동굴이나 야외 암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행위는 수만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부단하게 계속되어 온 인류의 유일한 문화적 표현이다. 어째서 반 고흐의 작품 하나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집을 하면서 댐을 만든답시고 동굴이나 암벽 예술을 파괴하는 것은 방관하는가? 저자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대부분 기원이 되는 유럽에서 온 문화, 예술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인디언 문화의 기원이 되는 것이나 그 이전의 문화에 둔감한 것을 예로 들며, 그러한 태도들은 일종의 문화적 인종주의로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덧붙여 저자는 인류의 기술과 지식, 과학은 진보했을지 모르나, 도덕적 가치와 자연에 대한 태도는 진보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그것을 괴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300만 년 전에 처음 출현했으며 299만 년 동안 사냥꾼-채집자로서 살아왔다! 신석기 시대의 변화는 1만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우리의 역사는 기껏해야 수천 년이다. 인간의 모험의 규모에서 볼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이 본질적인 기간은 아주 최근이다. 때문에 저자는 문자가 기록의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때 실제 인간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즉 조상들은 이미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사람들은 이미 계절의 순환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월상(月相)을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과일이 어느 때에 익고, 순록이 어디로 옮겨 갈 것인지 등에 대하여 미리 예측했다. 그들은 삶의 주기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시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미리 준비하고,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하여 신석기 시대의 정착민들은 이 모든 것의 혜택을 받았으며, 기술 혁신을 더욱 배가시켰다. 기원전 5000년경 다뉴브의 대농장에서의 생활과 앙시앵 레짐기의 프랑스 농장에서의 생활을 구분하는 기준은 겨우 쟁기, 제분기, 몇 가지 추가 기술들이 전부이며, 신석기 시대 혁명의 본질은 19세기 산업혁명까지 계속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야생의 세계를 갈망하고, 사냥 따위를 통해 스스로가 늘 선상(船上)의 유일한 주인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정신 또한 변하지 않았다. 경쟁의식, 타인에 대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식은 가족을 늘리고 노동을 일반화했으며, 피라미드 사회를 만들고 구속을 강화했던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지구의 승리자인 동시에 희생자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은 선사 시대 이후로 진정 진보했을까?
끝으로 인간은 선사 시대 이후로 진정 진보했을까? 저자는 인간은 기술과 지식에서 엄청나게 진보했지만 인류의 대연회, 신석기 시대가 예고할 수 있었던 인간의 해방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는 오늘날까지 중단 없이 승리해 온 인간의 역사의 한 과정의 시작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각각 반대급부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자연에 대한 각각의 승리는 우리의 환경에 대해 새로운 긴장을 유발시키고, 안락함을 위하여 실현된 각각의 행보는 새로운 고통을 동반한다. 그리고 개인이 획득한 자유는 하나의 새로운 구속에 의하여 대가가 치러진다. 사실, 투쟁은 항상 미완성이다. 인간의 모험에는 앞으로도 항상 행복한 부분과 불행한 부분, 선과 악,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항상 존재할 테고, 그것은 우리 인류라는 종의 속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