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출신 신부와 미국인 교수 부부가 노고산 기슭에서 펼치는 결혼 준비 특강!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섹스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정작 나의 '성'은 감추기에 바쁘다. 사람이면 대부분 경험하고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면서도 정작 숨기고 싶어 하는 성.
그래, 이런 분위기에서 우선 내 성부터 이야기해 보자. 남의 것이 아닌 나의 성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성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다양한 성 담론이 이루어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립될 것 아닌가.
책의 탄생까지 : 28년 전 마지못해 참석한 강의가 씨앗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한 스팔라틴(약칭, 크리스)은 천주교 예수회 신부이자 38년 동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인이다. 그는 휠링대학교 후배이자 예수회 신도인 미국인 부부 제임스(약칭, 짐)-잰과 결혼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을 공유하면서 책을 같이 써 보자는 데까지 의견을 모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스팔라틴은 1965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강의실 안팎에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우리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졸업하기 전에 결혼하면 안 될까요?", "사랑한다면 결혼 전에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같은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을 거듭 받으면서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의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사회적인 관습, 책 속의 내용만으로는 학생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비록 독신생활을 하는 성직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통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결혼준비특강"이란 강좌를 개설했다. 개설 당시의 제목은 "성·결혼·가정"이었다. 그러나 '성'이란 말이 들어가자 여학생들이 수강을 기피하는 바람에 이름이 바뀌었다. 20년 된 이 강좌는 서강대 출신이라면 다 알 정도로 초기부터 인기가 있어 지금도 한 학기 수강생을 1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토론식으로 진행하는 이 시간에 학생들은 로맨스나 이성 간의 대화나누기, 상처와 용서, 느낌과 사랑, 성과 결혼의 의미 같은 주제를 두고 자신들의 체험을 서서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스팔라틴이 결혼이나 성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임스와 잰 부부 덕택이다. 짐은 1975년 주한미군의 일원으로 서울에 파견되어 군대 내에서 상담일을 하고 있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부일치모임(Marriage Encounter)도 진행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부부일치모임을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짐과 잰이었다. 이 모임 초기에 서강대 신부를 초대했는데 어쩌다 스팔라틴이 가게 되었다. 억지로 들은 강의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아주 재미있어 그 후 한국에서 부부일치모임이나 성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스팔라틴은 자신은 비록 독신자이지만 사제라면 모든 사람의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참여했다.
성에 대한 책을 써 보자는 말이 여러 차례 오간 후 이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스팔라틴은 한국에서, 제임스과 잰은 미국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았고 그 사이 스팔라틴은 세 번 미국으로 건너갔다. 셋은 모이면 토론하고 글 쓰는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래도 미흡해 최종적으로 글을 완성한 것은 짐과 잰이 2001년 서강대 교환교수로 방문했을 때였다. 기획에서 집필 완료까지 4년이 걸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셋이 처음 만나던 순간에 싹트기 시작했으니 28년 만의 결실인 셈이다.
책의 내용 : 신부와 교수부부의 파격적인 성 고백
이 책에는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다듬은 필자들의 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스팔라틴은 이 책을 "우리의 체험과 성찰을 기반으로 우리의 의견과 사상, 확신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性담론이 전개되어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 명의 필자는 자신들의 성적 체험을 돌아가면서 고백하는데 그 고백은 파격적일 만큼 솔직하다. 그러면서도 '성의 의미'나 '혼전성교', '성과 윤리' 같은 어려운 주제에서는 마치 우물을 파내려가듯 깊이 있게 사색하고 있다. 필자들이 오랜 시간 성 문제를 탐색하고 궁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은 성(sex)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성이 훌륭한 인간관계나 이성 관계와 관련이 있는가? 성욕이나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이 어떻게 친밀감과 결혼으로 통하는가? 성은 어떻게 성차별이나 페미니즘 같은 사회 문제와 관련이 있는가?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필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이므로 자신들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독자들이 이 글을 보고 자신들의 체험을 성찰해 보거나 성적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얻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내용 요약은 별도의 박스로!)
책 출간의 이면 : "그렇게 성에 관심 있으면 차라리 결혼해라"
이 책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스팔라틴은 성직자가 아닌가. 일반인들도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신부가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어서 자유롭지 않았을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성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자 미국의 어머니와 형님은 "미쳤느냐"고 했으며 동생 댁은 "그럴 거라면 차라리 결혼을 하라"고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반응도 똑같았다. 스팔라틴 신부가 한국인 교수들을 '결혼준비특강'에 초대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한결같이 거절했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어떻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며 놀라고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에 대해 신뢰감을 쌓이면서 자기의 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학기가 끝날 즈음에는 오히려 더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졸업생 중의 일부는 학교 밖에서 지금도 이 모임을 스스로 운영해 가고 있다.
스팔라틴은 "학생들이나 일반 사람들 모두 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금까지의 환경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점차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좋은 예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한다.
편집자가 보기에는
이 책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솔선수범의 자세이다. 다른 사람에게 성을 말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필자들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 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둘째는 외국인들이 쓴 글이지만 독자가 읽는데 어색함이 없다. 그 이유는 일단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고민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만약 필자들이 한국 경험이 없었더라면 감동은 훨씬 덜했을지도 모른다.
셋째는 '성'을 단정 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 관념을 따르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결론이 뻔한 것 같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은 진지하고 충실하며 오랫동안 사색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너무 진지하다. 여전히 대학생들의 교양 도서 같이 건전성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혼전 성교나 친밀감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좀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인다.
자세한 책의 내용
1장 '성을 처음 자각했을 때'에선 세 사람은 성에 눈을 뜨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짐은 벌거벗은 여자가 등장하는 누드 잡지를 보고 흥분했던 이야기를, 잰은 중학교 시절 여자친구들과 가슴, 등 언저리를 만지면서 느꼈던 이상야릇한 감정에 대해 말한다. 크리스는 남자애 같은 여자애가 새롱거리던 태도를 통해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장 '성의 의미'에서는 육체적인 성(Sex)과 보다 포괄적인 성(Sexuality)의 개념을 정의한다. 넓은 의미의 성은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연과 일, 휴식을 할 때에도 성적 체험이 이루어지는데 성이란 결국 친밀감으로 가는 길이며 성적(性的)이 된다는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다.
'성의 충동'을 다룬 3장에서는 성적 욕구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내 삶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과 자각'을 다룬 4장은 자연이나 사물에서 느끼는 자각이 성적 체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루고 있다. 잰은 촛불이나 음악, 아름다운 꽃 등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개방하게 하는 것은 짐과의 성적 체험이라고 말한다.
5장 '매력과 끌림'에서는 짐은 낯선 여성의 옷차림이나 상대방의 눈빛, 말투에서조차 성적 느낌을 받기도 하고 잰은 연애 시절 만나는 남자마다 나름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크리스는 매력을 끄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적 매력이란 그 자체로서 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만당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6장 '데이트와 낭만'에서는 각자 이성과의 데이트나 이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크리스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데니스 수녀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비통의 눈물을 흘렀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7장의 '성의 궁극적인 목표'에서는 성의 최종 목표는 친밀감이라고 말한다. 짐은 잰과 친밀해질수록 성적 매력을 느끼며 잰 역시 친밀감의 완전한 표현은 성교라고 말한다. 크리스 역시 인간의 가장 친밀한 표현은 성교라면서 성직자의 경우 그 점이 불가능하므로 이런 욕구를 극복하고 우정의 차원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8장의 '성과 서약'에서 짐은 서약이란 성을 육체적 만족에서 성스런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의식이라고 말한다.
9장은 '혼전 성교'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짐은 성교란 따로 떨어진 체험이 아니라 잰(부인)과 자신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성교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잰은 짐과의 5년간의 연애기간 중 한번도 성교를 하지 않아 견디기가 힘들었으나 나중에 결국 성교란 결혼한 사람의 성실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결혼 관계에서만 성교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크리스는 성교란 사랑의 친밀한 표현이어서 '결혼'은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말한다.
10장 '성과 윤리'에서 크리스는 윤리의 핵심은 양심의 목소리라면서 양심은 다양한 느낌이나 생각, 태도를 걸러내는 원천이어서 매 상황에서 가장 훌륭한 행위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11장 '남성과 여성'에서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필자들은 남성은 결과를, 여성은 과정을 중시하는데 여성의 경우 아이를 아홉 달 동안 뱃속에 잉태하고 있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인 12장의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에서는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낳았다며 결국 페미니즘이란 남성과 여성이 사회에 똑같이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자 통합된 세상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